의무감으로 살지 말자, 누리며 살자, 그래서 떠난다 by 바람

의무감으로 살지 말자, 누리며 살자, 그래서 떠난다

중국 7대 古都 연결 4200㎞ 자전거 순례 하는 홍은택 전 NHN 부사장

나이 마흔, 14년간 꽤 인정받으며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뒀다. 가족을 데리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2년간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아르바이트와 병행하며 석사 과정을 밟았다. 빠듯했던 공부를 마치고 나니 잠시 놀고 싶어졌다. 제일 먼저 한 일이 자전거 여행이었다. 그것도 미국 대륙을 대서양부터 태평양까지 가로지르는 6400㎞의 대장정. 소형 트레일러까지 자전거에 연결해 온갖 짐을 꾸렸다. 무게가 40㎏에 달했다. 사이클복 두 벌과 양말 두 켤레, 칫솔·수건만 남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덜어진 건 짐만은 아니었다. 머릿속 잡념도 함께 비워졌다. “앉아만 있던 생활에서 움직이는 생활로의 변화”가 가져다준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80일간의 미국 일주를 2006년 『아메리카 자전거여행』이란 책으로 펴냈던 홍은택(49) 전 NHN 부사장 얘기다.

그로부터 7년. 쉰 살이 다 된 나이에 그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장, 높은 연봉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미국을 다녀온 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나라, 중국을 탐험하기 위해서다. 두 달간 중국 7대 고도(古都)를 자전거로 순례한다. <표 참조> 거리는 4200㎞. 그의 자전거 여행기는 중앙SUNDAY에 29일부터 연재된다. 출발을 앞둔 그를 19일 만났다.

-자전거 여행을 위해 사표를 냈다.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
“3년 전부터 중국여행 계획을 세웠다. 다만 아내가 ‘아이가 대학 가기 전까진 아버지 직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 기다렸다. 나는 임원(부사장)이라 휴직이 안 된다. 그만두지 않으면 여행을 갈 수 없다.”

-7년 전 미국을 자전거로 누볐다. 두 번째 나라로 중국을 택한 이유는.
“21세기의 G2로 불리는 두 나라를 비교해 보고 싶었다. 미국은 신문사(동아일보) 다닐 때 워싱턴 특파원을 했고 유학 생활도 해봤다. 6년간 머물렀으니 어느 정도 아는 나라인 셈이다. 반면 중국에 대해선 알고자 하는 노력이 덜했다. 쉰 살 이후부터 계속 공부해야 할 대상을 중국으로 정했다. 중국인들을 만나 부대끼면서 그 나라를 생생하게 느껴보고 싶었다. 다녀와선 중국입문서를 쓸 계획이다. 한국은 미국과는 정치적으로, 중국과는 지리적·역사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두 나라를 바라보는 관점에 독특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코스는 어떻게 정했나.
“미국 여행을 할 때는 트랜스아메리카 트레일(Trans-America Trail)을 따라갔다. 버지니아주 요크타운에서 출발해 오리건주 플로렌스까지 10개 주를 아우르는 여정이었다. 중국 여행은 중국고도학회에서 인정한 7대 고도를 삼각형으로 잇는 코스를 내가 만들었다. 시안(西安)·베이징(北京)·뤄양(洛陽)·난징(南京)·카이펑(開封)·항저우(杭州)·안양(安陽) 등 7개 도시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현대 중국이 변모하는 모습을 보려고 한다. 중원(中原)을 품고 역대 왕조들의 수도를 거쳐가면서 사회와 문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다. 물론 한 번에 중국을 다 본다는 건 불가능하다. 어렸을 적 땅따먹기 놀이 하듯 삼각형을 계속 그려가며 강남판·서남판·영남판 식으로 여러 차례 탐험을 하려고 한다.”

-어떻게 준비했나.
“중국에 출장은 가봤어도 여행을 간 적은 없었다. 네이버 협력사가 중국에 있는데 직원이 2000명이나 된다. 거기서 사귄 중국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현지인과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수십 개 갖고 간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이용해 현지인들과 소통하며 여행할 생각이다. 2년간 중국어 교습도 받았다. 읽고 쓰기나 간단한 말하기는 큰 어려움이 없다.”

60일간 4200㎞. 6일 달리고 하루 쉬는 게 자전거 여행의 철칙이라고 하니 줄잡아 하루에 80㎞는 쉼 없이 페달을 밟아야 한다. 체력이 어지간하지 않으면 엄두를 못 낼 강행군이다. 게다가 그는 중간중간 글도 써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체력은 보통사람, 평범한 직장인의 그것은 아니다. 올 초 도쿄마라톤을 3시간42분29초에 완주했다. 철인3종 경기를 한 건 더 오래전부터다. “타면 탈수록 아플 가능성이 점점 줄어드는” 자전거 타기를 일찌감치 시작한 것도 ‘강철체력’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됐다. 자전거인(人)이 된 계기가 궁금했다.

-미국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쉼 없이 살았다. 내가 82학번(서울대 동양사학과)인데 386세대가 다 그랬듯 봄날의 정취 한 번 느껴볼 새 없이 최루탄 냄새 맡으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군대를 갔고 졸업 후 신문사 사회부·정치부·국제부를 거치며 정신없이 살았다. 미국에 가게 된 건 이라크 종군기자를 포함해 14년간 기자 생활 열심히 했으니 이젠 즐거운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기자 생활은 하루 단위로 끊어지기 때문에 지식을 내 안에 축적하는 데 대한 갈망이 늘 있었다. 그래서 2003년 미국으로 가 미주리대 저널리즘 석사 과정을 했다. 당시 지역 라디오방송 프로듀서를 하면 학비와 생활비가 나온다고 해서 같이 하다 보니 참 힘들었다. 자전거 여행은 그런 나한테 주는 상 같은 거였다. 계기가 됐던 기억에 남는 순간도 있다. 특파원 시절 버지니아주에서 메인주까지 3200㎞에 이르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산더미 같은 배낭을 짊어진 채 종주하는 남녀를 본 적이 있었다. ‘저렇게 어마어마한 거리를 걸어서 가는 사람도 있구나’ 싶어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저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이 만드는 어드벤처 영화의 주인공이로구나, 의무감으로 사는 삶이 아니라 누리는 삶이 아닌가 하는 선명한 느낌이 날 자전거로 이끈 것 같다.”

-도보도, 자동차도 아닌 자전거를 탄 이유는.
“자전거는 주체적이고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이다. 서울에 돌아와 집(수서)에서 광화문 사무실까지 7개월간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도 했는데, 회사에 억지로 끌려나가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석유가 아니라 허리와 뱃살의 지방을 태우면서 가는 거니 건강과 환경에 좋은 건 물론이고. 예약도 필요 없고 시간에 맞출 필요도 없다. 숙소를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이 곧바로 시작되니, 분절된 경험이 아니라 연속성을 띠는 느낌이다. 게다가 중간에 멈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좋다. 미국 여행에서도 나 같은 바이커(biker)부터 동네 할머니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자동차에서 내리면 대개 현지인들은 경계심을 품는데 자전거는 아니다.”

-체력이 안 되면 힘든 시도였을 텐데.
“특파원 시절이던 1999년 무렵 운동을 시작했다. 동네를 한 바퀴씩 뛰었다. 이게 두 바퀴, 세 바퀴로 늘어났고 마라톤 10㎞, 하프코스, 풀코스를 뛰게 됐다. 수영도 이따금 했는데 그러다 보니 철인3종 경기도 하게 됐다. 그래도 자전거 여행 떠나고 처음 하루 이틀은 죽도록 힘들었다. 6400㎞를 과연 갈 수 있을까 심각한 회의가 들 정도였다. 비용 마련을 위해 초반엔 번역 작업을 하면서 자전거를 타려니 더 힘들었다.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면서 끝까지 갔다. 그러다 보니 몸의 한계라는 게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3배, 4배 더 확장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소위 전문가용, 고급 자전거를 타나.
“사람들 짐작과 달리 난 자전거 매니어가 아니다. 미국 여행을 할 때 탄 자전거는 알렉스 몰턴이라는 고가의 영국제였다. 친구가 빌려준 거였고 여행 끝나고 돌려줬다. 보통 바퀴 지름이 26인치는 돼야 하는데, 내가 탄 건 20인치여서 무모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중국에 가져가는 MTB(산악자전거)도 빌려서 간다. 교통수단 이상의 큰 의미는 없다.”

-자전거를 타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두 가지다. 첫째, 육체적 도전에서 정신적 안식이 올 수 있다는 거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으로 페달을 밟다 보면 사고가 단순화된다. 그러다 다시 생각을 하게 되면 재충전이 된다. 둘째, 앉아 있는 삶에서 움직이는 삶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거다. 원시시대 인류는 수렵과 채집을 했다. 달리는 본능이 DNA에 있는 셈인데, 현대인의 생활은 이것과 배치된다. 자전거 여행은 몸속의 원시성을 깨우고 향유할 수 있는 기회였다. 도시 속 사무실 생활은 사람을 수동화하고 욕구불만 상태로 만든다. 오감(五感)을 열고 움직이는 삶을 알게 된 게 가장 큰 수확이다.”

-유학 떠날 때가 40세, 이젠 49세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없나.
“기회비용으로 따지면 참 비싼 여행을 하는 셈이다. 그게 가격으로 환산하니 그렇다. 가치로 환산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인생은 불가역적이다. 한 번 살면 돌이킬 수 없다. 재미있거나 진하게 살았다는 느낌과 경험은 돈으로는 살 수 없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은 돈으로 따지면 안 된다. 미국 유학 떠날 때도 실업자가 된다는 데 대한 불안감이 없지 않았지만, 다녀와서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노후에 대한 걱정? 왜 없겠나. 누구나 평생 먹고살 재산을 만들어놓고 은퇴하는 꿈을 꾼다. 그렇다면 그 다음엔 일을 하지 않고 노는 건가. 직장 수명이 다하는 것과 동시에 직업 수명이 끝나는 건 불행한 일이다.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평생 하는 게 궁극적으론 행복한 삶 아닐까. 풍족해서 걱정 없는 상황보단 긴장되고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뭔가를 하는 게 성취감도 더 크다.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 날 던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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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을 만한 사람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은 돈으로 따지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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